김치는 오미를 갖추고 있다. 김치를 잘 모르면 색깔에서처럼 그 맛도 매운맛과 짠맛밖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치 맛을 알기 시작하면 외국인이라 해도, 김치가 단순히 맵고 짜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치는 유산 발효식품으로 독특한 신맛, 즉 산미가 있다. 오행으로 볼 때 신맛은 동방을 뜻하는 것으로, 김치가 익는다는 것은 곧 해가 돋는 것처럼 그 맛의 기점에 신맛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발효되어 익어갈수록 김치는 신맛을 내고, 마지막에는 맵고 짠맛까지 흡수해버려 초처럼 되어버린다. 한국 사람들은 왜 고추장에 초를 넣어 초고추장을 만들어 먹었을끼? 마늘 같은 것을 먹을 때 초를 쳐서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치의 신맛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김치의 맵고 짠맛은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신맛으로 중화되고 융합되어 절묘한 맛의 화음을 빚어낸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한국인은 매운맛을 좋아한다기보다 매운 것을 없애는 맛을 즐긴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 한국의 고추는 가까운 일본 고추에 비해 매운맛이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붉은 색소는 두 배나 된다. 보기 만큼 맵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비타민C의 함유량은 일본 것의 두배나 된다. 이처럼 한국 고추의 특징이 매운맛에 있지 않은 것처럼, 고추를 많이 쓰는 한국음식도 상식과는 달리 매운맛에 그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치에는 고추가루와 소금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과일이나 설탕도 들어간다. 그리고 고추 자체에도 감미가 있는데, 한국고추는 일본 것에 비해 1.5배나 달다. 흔히 한국인들은 김치를 담그는 배추나 무의 최상급을 고를 때도 단맛에 기준을 둔다. 이처럼 김치는 신맛 말고도 시원한 김치 맛 뒤에 남는 달콤한 미각을 함유하고 있다.
또 떫은맛이 섞여야 진짜 김치 맛이 난다고도 한다. 청각이나 부추,왕소금으로 절여 담근 막김치에는 쓴맛이 맴돈다. 그 쓴맛만을 선별해 담근 김치가 바로 고들빼기이고 갓김치이다. 맵고 짜고 신, 강렬한 맛들의 밑바닥에는 마치 콘트라베이스의 은은한 저음처럼 쓰고 단맛이 깔려있다.